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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이재영ㅣ독설의 역설

자신이 만든 법이 악법

이재영_독설의 역설[8]

나는 2주 전 칼럼에서 노무현 대통령도 자연인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으니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노 대통령 역시 “대통령 정치 활동의 자유는 헌법상 일반인의 기본적인 자유권(15일 '한겨레' 인터뷰)”이라고 주장했고, 청와대 대변인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한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아직 후진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19일 브리핑)”고 반발했다.

내가 노무현에게도 이런 저런 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옹호하는 것과 노무현 대통령과 그 수하들이 기본권을 침해받은 양 떠드는 것은 많이 다르다. 이번 글에서는 정치적 권리 이전에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의 양심을 묻는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법이 나쁘다거나 자신의 권리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선거법이 노무현 대통령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악법 피해자 아닌 가해자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한 2003년 2월 25일 이후 공직선거법은 무려 열 번이나 개정되었다. 즉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정치철학에 따라 선거법을 올바르게 고치거나 잘못된 선거법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열 번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또는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열린우리당을 통해 선거법을 올바르게 고치기는커녕 악법을 공포하고 집행하며 지난 5년을 지내왔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제재는 인과응보일 뿐이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변명하겠지만, 선거법이 악법임을 몰랐다기보다는 악법을 이용해 정치적 독점권을 누렸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하위직 공무원을 해임하고, 체포하고, 구속했다. 자신에게 적용된 공직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중립 의무’와 공무원법을 망나니 칼처럼 마구 휘둘렀던 것이다. 노 대통령 말마따나 “정치 활동의 자유는 헌법상 일반인의 기본적인 자유권”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이고 말단 공무원들은 사람이 아닌가 보다.

자신이 만든 법에 경고받은 노 대통령이 피해자인가, ‘소신’을 밝혔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조승수가 피해자인가? 노무현의 ‘소신’이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키 위해 조승수를 복권시켜야 했지만, 노무현은 자기 대신 감옥에 간 가신들과 부패 재벌만을 풀어줬을 뿐이다.

현행 선거법은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악법이다. 누가 좋다거나 싫다거나, 무엇에 찬성한다거나 반대한다거나 누구든 자유롭게 말해야 하지만, 노무현 임기 동안 선거법은 국민의 입을 묶는 방향으로 개악돼 왔다. 선거일에 가까워서는 실명이 아니고서는 인터넷에 글도 못 쓰고, 청와대 홈페이지나 포탈 사이트에 올린 글 때문에 수사받고, 장관을 패러디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구속된다.

노무현은 그런 악법을 발의하고 입법한 열린우리당의 수장이고, 검찰과 경찰의 선거법 단속을 지휘 감독하는 행정부의 수반이다. 따라서 그는 악법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간혹 이 법이 껄끄러운 적도 있었겠지만 수혜 입은 바가 더 커 잠자코 있다가, 이제 와 희생양인 척 떠들어대는 꼴이 볼썽사납다.

누가 진정한 피해자인가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일관되지 않다. 자신에게는 정치적 권리가 있다고 마음껏 외치지만, 똑같은 말을 한 말단 공무원은 잡아 가뒀다. 자신의 정치자금 후원자인 강금원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안희정은 복권시켜도 자신의 반대자인 조승수의 억울함에는 묵묵부답이다. 국민은 무슨 무슨 법이 무서워 말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만은 ‘그 놈의 헌법’을 비난하는 자유를 만끽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 아직 후진정치”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편협한 시각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치적 권리를 저만 누리겠다는 통치자의 심보는 박정희 이래 변하지 않았다. 다만 민주주의 권리에 대한 탄압의 능력이 약화됐을 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 알아야 하는 것은 단순하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권리인 동시에, 자신에 반대하는 타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의무이기도 하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

 

제9호 18면 2007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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