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한 기운 품는 갑오년 백마를 보라
진한 여섯 부족장이 언덕에 모여 남쪽을 바라보니 나정 우물가에 번갯빛처럼 이상한 기운이 비치고 백마 한 마리가 꿇어 절을 했다. 가보니 말은 길게 울다 하늘로 올라가고 거기엔 커다란 자줏빛 알 한 개가 있었다.
<삼국유사>가 전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등장이다. 말 타는 겨레, 기마(騎馬)민족이 이 땅에 와 원래 살던 이들과 만나는 모습으로도 풀이된다. 신령한 기운 속에서 하늘과 인간을 잇는 천마(天馬)의 모습이 그려졌다. 경주 천마총(天馬冢)에 그려진 모습을 상상한다.
<삼국유사>와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나온 고구려 시조 동명왕 신화의 말 이야기도 심상치 않다. 모함으로 말 먹이는 허드렛일을 하게 된 주몽이 어머니 유화부인의 어진 가르침으로 준마(駿馬)를 골라 키웠는데 이 말이 나라를 세우는 일에 큰 구실을 했다.
현대에서는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가 <광야(曠野)>에서 그 신화를 잇는다.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밝고 크고 신성한, 상서(祥瑞)의 기운 넘치는 흰색과 신령스런 힘의 말 이미지를 합친 백마는 지금도 우리의 의식에서 작동 중이다.
말이 수송과 승용의 수단으로 활용된 역참(驛站)의 전통은 삼국시대로 그 시초가 올라간다. 요즘의 통신 기능까지를 이 역참은 해냈다. 의당 탈거리에 이 이미지는 많겠다. 차 이름 포니 갤로퍼 에쿠스는 다 말이다. 천마 은마 백마 등 관광회사 이름이 흔한 까닭이다. 외국차 페라리나 무스탕도 말이다. 말과 인간의 관계다.
박물관에서 이런 모습은 더 잘 보인다. 말에 얹힌 장치나 도구들에서 옛 사람들의 ‘말사랑’을 본다. 말과 마구(馬具)는 오늘의 승용차와 같은 이미지이고 씀씀이였다.
고기로도 우리와 가까웠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말린 말고기가 제주도의 주요 공물(貢物)이었다. 최근 말고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말고기 요리점이 생겨나고 있다.
상징적인 의미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과거 백말 타고 장가든 신랑의 모습에서 말은 힘과 남성의 상징이었다. 말의 정령(精靈)에 대한 신앙적인 의식(애니미즘)도 여느 동물에 대한 것보다 다양하고 강렬했다.
이런 모습은 인류 여러 종족에게 상당 부분 공통된 것으로 평가된다. 사람 사는 원형(原形 prototype)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다양한 것 같은 세계 곳곳의 말 관련 의식과 풍습이 실은 줄기는 같고 곁가지가 다채로운 대동소이(大同小異)의 양상이라는 것이다.
매끈하고 탄탄한 체형, 뛰어난 순발력과 강인한 힘의 상징인 말은 12지의 일곱째 이름 오(午)로 우리 민속에서 양(陽)의 기운을 상징한다. 해가 가장 높아 양기 충만한 때가 정오(正午)다. 오전 11시~오후 1시가 오시(午時)다.
2014년은 천간(天干)으로는 십간(十干)의 첫째 갑(甲), 지지(地支)로는 오(午)다. 갑오년 말띠해다. 매우 왕성해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리 믿으면 그렇게 된다. 당신도. (관련자료 국립민속박물관)